편집적 부표 Editorial Buoy / 2023-

경험은 무의식의 바다 아래로 침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이들을 인양하는 행위를 작가는‘회상’에 대응한다. 일부는 부표 형태로 떠 있는데, 부표 아래 드리워진 그물에는 해당 부표(기억 조각)와 관계성이 있는 사건들이 얽혀있다. 작가의 작업은 부표 그물에 포획되는 것들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된 듯하다는 물음에서 시작하며, 이들 사이에 모종의 편집적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는 특정 도상을 중심에 두고 이와 관계성을 맺는 기록을 무작위로 수집, 재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부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줄다리기를 살펴보고 기억 세계의 질서를 재편함으로써 무의식 생태계를 종합적 으로 반추한다.

(작가노트)
삽화의 정의를 살펴보면, 삽화(揷畵, illustration)는 도해(圖解)라고도 하며, 특히 서적(사본, 인쇄본 등), 잡지신문광고 등에서 문장 내용을 보충하거나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첨부하는 그림을 말한다. 이때 삽화는 함께 놓인 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아가 원본의 역할을 대체하고 원본과 동등한 위치에 선다. 소유의 목적이 아닌 이상 인용된 삽화와 원본은 같고, 지면에 함께 있는 텍스트나 삽화의 캡션 또한 시각 언어만 다를 뿐 같은 곳을 향한다. 

기억을 통해 과거를 보는 것은, 과거 순간의 원본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대체하는 삽화나 텍스트를 읽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같은 기억을 떠올렸을때 그것들이 정확하게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회상때마다 마치 편집 디자인을 하듯, 기억은 계속해서 다른 조합으로 구성된다. 기억의 회상은 자의든 타의든 편집적이며, 이는 원본 기억이, 그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 복제와 조합을 거듭하며 진화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