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역사 III, History Documentation>
:분절된 시간의 재구성과 다성적 기억
본 연작은 하나의 ‘경험 원본’이 어떻게 무수한 ‘기억의 사본’으로 변주되고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하는 매체적 실험이다. 작업의 시발점은 4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물을 끊임없이 재배치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기록이다. 이 연속적인 영상은 가공되지 않은 경험의 총체이자 1차적인 기록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이 방대한 기록의 바다에서 특정 구간들을 의도적으로 발췌하고 크로핑하는 과정을 통해, 선형적으로 흐르던 시간의 연속성을 폭파하고 분절한다.
작업의 핵심은 영상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파편들이 각기 다른 시각적 결과물로 치환되는 지점에 있다. 한지 위에 청사진(Cyanotype)으로 구현된 각각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구성과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원본 영상, 즉 단 하나의 기억에서 잉태된 파편들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뒤, 회상의 순간마다 서로 다른 사본을 꺼내어 보는 기억의 메커니즘을 모사한다.
이러한 발췌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인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의 필터를 통해 역사를 다시 쓰는 사관의 행위와 같다. 영상 속의 연속적 경험을 끊어내고 파편화하는 것은 시간의 완고한 흐름에 균열을 내는 일이며, 그 틈새로 ‘지금-시간(Jetztzeit)’의 잠재성이 스며들게 하는 작업이다.
한지 위로 옮겨진 청사진들은 디지털의 픽셀 글리치와 아날로그적 박리 현상을 동시에 드러내며 풍화된 기억의 촉감을 전달한다. 기록물은 결코 경험의 원형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며, 기억 또한 기록의 완벽한 형태로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불완전함 속에서 기억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기억이 허술하고 불투명하기에 비로소 현재의 내가 투영될 수 있는 여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본 연작은 과거라는 재료를 이용해 벌어지는 현재의 사건이다. 동일한 원본 영상에서 추출되었음에도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결코 과거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으며 그 지점 인근에서 매번 미끄러지며 새로운 현재를 빚어내고 있음을 증명한다. 작가는 이 분절된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박제된 과거가 아닌 매 순간 다르게 소환되는 생생한 ‘현재의 신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작가 노트
1.기록역사 iii 에 대하여,
“기록과 기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 연작으로, 물리적 기록물을 기반으로 한 기억-회상 일반의 구조와 시스템, 나아가 이들의 성질들을 개괄적으로 탐구한다. 나아가 연작 중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주었다”는 기억 일반에서 발췌된 기억의 물리적 형태를 재배치하여 기억 일반의 연속성을 끊어내고 새롭게 변주하는 작업이다.
2.경험은 현재-찰나를 스치며 곧 이내 과거 영역에 자리 잡고, 이 경험은 우리 스스로에 내재 또는 신체 밖에서 기록물의 형태로 ‘기록’되는데, 작가는 기억-회상이 이것을 현재 시점에서 ‘재구현-재구성’하는 과정이라 바라보며, 나아가 이러한 구현의 작동되는 원리가 “발췌적”성질을 가짐에 작가는 주목한다.
3.작가는 정물 배치 과정을 영상 기록함으로써 연속적 경험을 물리적으로 남기는데, 이후 프레임 단위 발췌와 부분 크로핑 같은 편집 과정을 통해 경험된 연속적 기록을 파편화, 분절화한다. 이들 후작업은 기록된 경험의 회상에 해당하는, 즉 현시점에서의 경험 “재구현-재구성” 프로세스에 해당되며, 이때 호출된 이미지들은 디지털 기록으로서도, 아날로그적 기록으로서도 풍화 또는 박리된 형태를 보인다.
4.기억은 결코 기록물의 완벽한 형태로 저장되지 않으나, 기록물 또한 완벽하게 기억의 본 경험을 보장하지 못한다.
5.사건 경험 당시 1차적으로 기록이 발생하며, 회상 작용시 2차적으로 기록이 발생한다. 첫번째 기록은 현상자체에 대한 목격자적 성질이 강하며, 두번째 기록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즉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적인 성향을 띤다.
6.기록된 경험을 분절하고 발췌하는 것은 경험의 시간적 연속성을 파괴하는 행위에 해당하며, 동시에 시간적 연속성의 균열에 현재라는 잠재성이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든다.
7.역사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는 이어짐이 아닌(단순한 반복이 아닌), 이어짐이 끊어지는 사건들이 있어야, 즉 기존의 흐름을 분절하는 다른 사건의 행위가 있어야 성립한다. 역사는 단순히 흘러온 추이가 아니며 분기점 나열이라 생각한다.
즉, 반복과 끊임 없는 과거의 중첩이 깨지는, 전통으로부터 단절되는 그 지점은 역사가 발생하는 지점이며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기억이 발생하고 구현되는 지점이다.(벤야민은 이 지점을 순간적이고 섬광적이라고 표현한다.)
8.기억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은 완벽하지 않기에, 즉 허술한 지점들이 있기에 우리의 현재(즉 내가 체감하는 나의 실재가)가 스며들 수 있어서 아름다운 것. 이러한 지점들은 기억의 연속성을 폭파하고 분절함으로써 만들어진다.
발췌*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 1927 ~40) 중
“아름다움의 고유한 시간이란, 신화가 몰락하여 폭파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으로 규정된다”
연속성을 폭파하는 행위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즉 잠재성에 숨결을 불어넣는 행위이자 반-신화적인것으로, 작가는 연속성의 폭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벤야민의 입장을 넘어 새로운 연속성(다르게 말하면 또 다른 신화)의 구축을 통해 기존의 연속성을 폭파하는 행위가 더 많은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반-신화적” 행위라고 바라본다. (더 많은 잠재성을 끌어내고, 동시에 연속성의 아름다운 측면을 인정하는)
9.나의 발췌행위, 또는 기록과 기억의 해부는 자칫 연속성을 파괴하기만 하려는, 그러니까 서사의 신화적 야성을 거세하려드는 벤야민의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나는 내가 미처 돌보지 못했던 지난 날의 그늘을 마주하고 미래로 갈 수 있는 악보를 새로 씀으로서 더 다양한 연속성을 만들고자 함이다. 그리고 연속성의 파괴라는 것은 이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나는 과거의 파편들이 지닌 음악적인 운율을 나는 좋아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들이 더 다양한 서사를 노래하기 염원하는바.
10.역사는 사관의 입장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가지며, 다시말해 역사는 과거(또는 기록)라는 재료를 이용하여 벌어지는 현재라는 시간의 사건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기억을 발췌하는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인양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시간을 구성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하여, 작가가 기록을 통해 마주하고 물에서 건져올리는 청사진들은 결국 기록된 당시의 경험이 아닌 현재를 인양하는 것이다.
발췌*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Walter Benjamin,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1940) 중 14번 테제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이때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다. Die Geschichte ist Gegenstand einer Konstruktion, deren Ort nicht die homogene und leere Zeit sondern die von Jetztzeit erfüllte bildet.”
11.기록을 통한 반추는 과거를 향하지 아니하며, 외려 현재의 신화를 그려내는 행위로, 음각된 수 많은 현재의 편린들은 다가올 누군가의 현재를 그려내기 위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릴 따름이다. 하여, 지금 마주하는 기록은 언제나 현재를 향하며,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과거를 마주한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12.기록의 재배치, 즉 역사를 쓰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기억-회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가지 경험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시시각각 무궁무진한 역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13.원본기억의 수 많은 발췌와 재배치는, 콜라주적인 기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초현실주의 #루이아라공)
기록된 영상을 보면서 일부를 포착하고 발췌하는 행위는 현시점에서 기록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고 이는 역사가가 하는일로 사관의 시점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회상은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
14.시리즈의 제목인 “기록 역사” 라는 이름은, 어떻게 보면 중의적-반복적 표현인 제목.
기록이 역사이기도 하며, 역사(우리가 흔히 과거라고 인지하는 영역)는 기록함의 대상이기도 하다.
동사적으로 접근하면, 기록을 함으로써 그 결과는 역사라는 형태로 자리잡고, 또는 역사하기 라는 것은 기록을 훑거나 이를 통해 또 다른 기록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행위로, 기록과 역사의 관계는 끊임 없는 꼬리물기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자아내는, DNA 나선구조 같아보이기도.
15.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적 방법론에서, 꿈에서 바라보는건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는거고(말그대로), 꿈에서 깨어나서 본것을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도 이성이 작용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즉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의 반추가 아닌 이성이 작동하는, 즉 현재가 작동하는, 현재를 그려내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매순간의 이러한 반추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를 반영하기에 매 회상은 서로 각기 조금씩 다른 새로운 기억(과거)를 만들어낸다.
ㅡ>우리는 결코 과거 그 순간에 다다를 수 없으며, 그 정확한 지점 인근에서 매번 미끄러진다.
결국 기억으로서의 과거라는 것은 실제로 과거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 시점으로 불려와 계속해서 현재의 나를 투영하는 무언가로 역할을 한다.















